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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여의도포럼] 차기 정부 성공의 열쇠 책임총리제

  • 작성자:홍보실
  • 등록일2022-03-31
  • 조회수 : 411

대선 과정에서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혁파하겠다고 공약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려는 결정은 무소불위의 대통령 절대권력을 손보겠다는 의지의 표출로 볼 수 있다.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 정치에서 탈피해 내각과 장관 중심의 분권형 통치를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책임총리제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나아가기 위한 유용한 정치 해법이다. 헌법에 규정된 내각제적 요소를 실천하겠다는 정치적 결단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비민주적 행태다. 국민주권과 민주주의 원칙의 심각한 훼손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책임총리제를 도입해 권력 집중을 억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공염불이 됐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이래 황제독재는 2000년간 존속된 통치 시스템이었다. 황제는 천자(天子)로서 절대권력을 행사했다. 일인전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재상중심제였다. 현능한 재상이 국가 대사를 관장해 황제를 보좌하고 내각을 통할하는 구조다. 책임총리제는 재상중심제의 현대식 모델로 볼 수 있다. 재상중심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성리학의 거두인 송나라 정이천이 답을 제시했다. 천하치란계재상(天下治亂系宰相). ‘천하의 잘 다스리고 못 다스림은 재상에게 달렸다’는 의미다. 재상이 황제의 위임을 받아 국정을 이끈다. 폭넓게 인사권을 부여받고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한다. 외교안보, 경제민생, 문화육성 등 국정 전반에 걸쳐 실질적 동반자 역할을 수행한다.

 

한나라 문제는 재상 진평에게 재상의 역할을 하문했다. 진평의 재상론은 핵심을 찔렀다. “재상은 위로는 천자를 보좌하며 밖으로는 제후와 오랑캐를 다스리고, 안으로는 백성을 복종토록 하며, 관리들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토록 한다.” 소하 조참 진평 같은 개국공신이 400년 한나라의 주춧돌을 세웠다. 제갈량의 보좌로 유비의 촉한이 삼국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시성 두보는 시 촉상(蜀相)에서 그의 이른 죽음을 눈물겨워했다. 당 태종 이세민의 정관성세는 방현령 두여회 위징의 경륜 없이는 이뤄질 수 없었다. 요숭 송경 장구령 같은 명재상 덕에 성당(盛唐)의 번영과 현종의 개원치세가 탄생했다.

 

문치를 중시하는 송나라 때 재상중심제가 꽃을 피웠다. 북송의 명신 장평방은 “나라를 황제 혼자 다스릴 수 없다. 신하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재상책임제는 군신공치(君臣共治)의 핵심이다. 송나라 재상은 입법권과 집행권을 행사해 권력이 막강했다. 군주는 귀하고 신하는 천하다는 군주우위론을 벗어나 황제와 재상이 공치를 추구했다. 황제가 사대부와 공동으로 국시를 정한다는 원칙이 확립됐다. 소위 공정국시(共定國是) 원칙이다. 송나라는 문치의 황금시대를 열었고 찬란한 사대부 정치가 만개했다. 역사가 천인커는 이를 두고 “중국 문화의 진전은 송대에 극에 달했다”고 평가했다. 명나라 말 만력제 초기 10년간 재상을 지낸 정거정은 만력중흥(萬曆中興)을 이끌어 명왕조의 수명을 수십년 연장시켰다. 국가 위기를 극복하고 사직을 구했다는 평을 얻었다. 인내심을 갖고 한 걸음씩 견실하게 국정을 풀어나가 전례 없는 성취를 이뤘다. 전국시대 상앙, 송나라 왕안석과 더불어 3대 개혁가로 존숭받는다.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에서 만기친람식 통치는 바람직하지 않고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진시황처럼 매일 올라온 상소문을 저울로 중량을 달아 처리하는 황당한 일이 재현될 수는 없다. 현행 헌법상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내각을 통할한다. 국무위원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실제적으로는 ‘대독총리’ ‘의전총리’ ‘실무총리’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종필 같은 정치총리도 있었지만 예외적 사례에 속한다. 헌법에 규정된 내각 통할권, 장관 추천권, 해임 건의권이 실제로 실행되도록 보장되면 책임총리제는 가동될 수 있다. 차관(급)과 주요 공공기관 인사권을 폭넓게 부여하면 실질적 권한이 강화될 것이다.

 

총리가 감히 간언하는 간관(諫官)의 역할을 수행해 대통령과 국민을 이어주는 가교가 돼야 한다. 대통령이 통합과 섬김의 정치를 펴도록 보좌해야 한다. 권력은 공유할 수 없다는 정치 공학에서 벗어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품위 있는 분권형 거버넌스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책임총리제는 윤석열정부의 확실한 성공 방정식이다.

 

박종구 초당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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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일자 : 2022-03-31